[기업 이모저모] 삼성전자 마틴게일배팅은 '깜깜이'인가 아닌가
분기마다 '동일 금액' 마틴게일배팅…'예측 가능성' 높아
정관변경은 아직…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속도 붙나
(서울=연합인포맥스) ○…361원, 361원, 361원, 363원.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작년 4개 분기 동안 주주들에게 지급한 주당 현금마틴게일배팅금(보통주 기준)이다. 4분기를 제외하곤 모두 361원이다.
더 이전부터 살펴보면, 2021년 1분기부터 매 분기 361원씩 주주환원을 실시하고 있다. 사실상 고정 마틴게일배팅을 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금액이 동일하다. 당시 3개년(2021~2023년) 주주환원 정책을 새로 시행하며 정규 마틴게일배팅 규모를 연 9조8천억원으로 정한 결과다. 해당 금액을 4로 나눠 분기마다 현금으로 돌려줬다.
2024년 1월 마틴게일배팅정책을 한 차례 업데이트했지만, 큰 틀은 유사했다. 기존대로 연간 9조8천억원을 정규 마틴게일배팅에 투입하되, 잔여 재원이 생길 경우 추가 환원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기반해 올 1분기 마틴게일배팅금은 주당 365원으로 책정했다. 금액이 소폭 늘기는 했지만, 주주들의 예상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하지만 삼성전자[005930]는 현재 '깜깜이 마틴게일배팅'을 하고 있다. 매 분기 예상할 수 있는 금액을 주주들에게 돌려주지만, 금융당국의 잣대에 비춰보면 그렇다.
삼성전자는 최근 공시한 '2024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현금 마틴게일배팅 관련 예측 가능성 제고' 항목에 '미준수(X)'라고 응답했다. 한국거래소가 반드시 보고서에 담으라고 가이드를 줘 지난해 신설된 문항이다. 삼성전자의 대답은 2년 연속 'X'다.
금융당국은 상장사들에 '선(先) 마틴게일배팅액 확정, 후(後) 마틴게일배팅기준일 확정'을 권하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 목적이다. 투자자들이 마틴게일배팅금이 얼마인지 인지한 상태에서 투자 여부를 결정하게 하자는 취지다.
그동안 국내 상장사 대부분은 연말에 마틴게일배팅금 지급을 주주명부를 폐쇄한 뒤, 이듬해 봄 마틴게일배팅액을 확정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마틴게일배팅에 대해 일절 알지 못한 채 일단 투자 먼저 하고, 추후 주총에서 결정된 금액을 받는 구조다. 글자 그대로 '깜깜이 마틴게일배팅'이다.
이걸 순서만 바꿔 3월 주총에서 마틴게일배팅액을 먼저 정한 뒤, 4월 초에 마틴게일배팅받을 주주를 확정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게 핵심이다.
당국의 의도는 명확하다. '깜깜이 마틴게일배팅'을 없애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후진적인 마틴게일배팅 관행이 국내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외면하고 저평가하게 만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이라는 판단에서다.
법무부도 유권 해석을 통해 힘을 실어줬다. 상법 제354조 제1항에서 '의결권 기준일'과 '마틴게일배팅 기준일'을 구별하고 있고 법령상 제약이 없으니 먼저 마틴게일배팅액을 확정한 뒤 기준일을 정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제시했다.
실제로 이러한 독려에 부응해 다수의 기업이 정관에 '이사회가 마틴게일배팅받을 주주를 확정하기 위한 기준일을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기존엔 마틴게일배팅기준일이 연말(12월31일)로 정해져 있었으나, 이사회 결의를 통해 이를 이듬해 주총 이후인 4월 초로 바꿀 수 있게 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따로 마틴게일배팅 방식을 손보지 않았다. 사실상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 분기·중간마틴게일배팅도 실시하고 있어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결산마틴게일배팅 외 다른 마틴게일배팅을 '선 마틴게일배팅액, 후 마틴게일배팅기준일 확정'으로 바꾸려면 자본시장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자본시장법 제165조의12(이익마틴게일배팅의 특례)는 상장사가 3월, 6월, 9월 말일을 마틴게일배팅기준일 삼아 45일 이내에 이사회를 열고 마틴게일배팅액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련 규정이 없는 상법과 달리 자본시장법엔 '말일'이 분기·중간 마틴게일배팅기준일로 명시돼 있다. 법무부의 유권해석으로 판단 근거를 확보한 제도 변경은 '결산마틴게일배팅'에만 한정된다.
물론 삼성전자도 결산마틴게일배팅 관련 정관은 고칠 수 있다.
다만 "분기마틴게일배팅 관련 정관을 임의로 변경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산마틴게일배팅 관련 내용만 바꾸면 결산마틴게일배팅과 1분기 분기마틴게일배팅이 근접하게 돼 오히려 주주들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게 삼성전자의 입장이다.
현재 1분기 마틴게일배팅기준일은 3월31일로, 만약 결산마틴게일배팅 마틴게일배팅기준일만 4월로 미룰 경우 연말 마틴게일배팅금보다 이듬해 1분기 마틴게일배팅금을 먼저 지급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배구조보고서에 "3년 단위의 주주환원 정책 발표를 통해 분기 단위로 동일한 금액의 정규 마틴게일배팅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주주들에게 '실질적인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적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관 변경 등을 아예 검토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상법 개정안 재추진 등 주주가치 제고 움직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빠르게 마틴게일배팅제도 손질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마틴게일배팅기준일을 마틴게일배팅액 결정 이후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개정에 대해 현재 검토 중"이라며 "이를 통해 주주들의 마틴게일배팅 관련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산업부 유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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