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날개를 달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 경제가 최근 불길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협박에 그칠 것만 같았던 대규모 관세 부과가 실제로 강행되면서 순항하던 미국 경제에 브레이크가 걸릴 조짐이다.
해외 언론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 '리세션(침체)'이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위험 신호는 세부적인 지표에서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우선 기업 측면에서 보면 최근 전미자영업연맹(NFIB)이 발표한 소기업낙관지수가 하락세를 나타냈다. 소기업낙관지수는 미국 민간노동력의 약 50%를 차지하는 소기업의 상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세부 항목을 보면 경제 개선, 판매 확대, 고용 및 재고 확대 기대감이 일제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운영자의 12%만이 지금이 사업을 확장하기 좋은 시기라고 판단했는데 이는 1월 대비 5%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2020년 4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한편 평균 판매가격을 인상할 것이라는 운영자는 32%로 전월 대비 10%포인트 상승했다.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다.
소기업 낙관지수가 하락한 데 이어 소기업 불확실성지수는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와 보복 관세, 물가 상승 등으로 경제가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기업의 확신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알파센스 데이터를 인용해 작년 10~12월간 61건의 기업 컨퍼런스콜에서 '연착륙'이 언급됐지만, 올해 들어서는 그 숫자가 7건으로 확 줄었다고 전했다. S&P1500 지수 구성 기업의 컨퍼런스콜에서 관세가 언급된 건수는 683건으로 작년 1분기의 49건에서 크게 늘었다.
소비 측면에서는 거의 모든 지표에서 둔화 조짐이 나타났다. 2월 소매판매는 1월 급감에서는 벗어났지만 증가율(전월 대비 0.2%)이 예상치(0.6%)를 밑돌아 회복 속도가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미국 경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가 어떠한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수인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외신들은 소비자들이 불필요한 곳에 지출하지 않거나 줄이는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전한다. 주유소에 들른 소비자들이 간식거리에 돈을 점점 덜 쓰고 있으며, 마트에서는 작은병의 위스키와 데킬라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이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후퇴해 소비자들의 물가 전망을 반영하는 미시간대의 기대 인플레이션은 2022년 11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앞으로도 물가 상승으로 소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업과 관련한 지표는 아직 크게 악화되지 않았지만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의 연방정부 인력 무더기 감원, 불법 이민자 추방 등의 영향이 향후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러한 와중에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은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 반등이 '일시적(transitory)'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파월 의장은 지난 2021년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일시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결국 오판으로 드러나 대규모 금리 인상으로 귀결됐고 파월 의장의 최대 오점으로 남게 됐다.
그럼에도 다시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꺼내 든 것에 대해 월가에서는 분분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너무 섣불리 일시적이라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과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파월 의장은 침체를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고도 말했지만 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담은 점도표에서는 경제 성장률 전망이 하향 조정되고 물가 전망은 상향 조정돼, 스태그플레이션 경계감이 엿보였다.

미국 경기가 침체되면 한국 경제가 받을 충격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4월 2일 예고된 상호관세 부과에서 한국도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예상돼 직접적인 트럼프발 충격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내부적으로 정치 불확실성이 길어지는 시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미국 경제 침체라는 우환이 겹치는 모양새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의 봄은 점점 멀어질지 모른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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