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1시간 반 만에 국회에서 조기 계엄 해제 결의가 이뤄진 것은 원화 자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달러-원 환율은 비상계엄 직후 한때 1,442원까지 오른 후 추가로 상승하지는 않고 있다. 온통 달러 강세를 촉발할 공약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를 앞둔 시점에도 가파른 추가 원화 절하가 없다는 점은 일단 선방이라는 평가다.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빠른 시장 안정 발언은 물론 외환당국 실무자들이 밤낮으로 선제적인 조치에 나선 결과물이다. 예상 밖의 정치 불확실성 파장을 적기에 진화하고, 한국 경제가 숨 고를 시간을 확보해주고 있다.

4분기 들어 달러화 대비 통화별 등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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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화 가치가 많이 흔들렸지만, 다른 통화와 비교하면 막연한 불안감에서 탈피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위치가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4분기 들어 달러화에 대한 통화별 등락률을 살펴보면 원화는 7.95% 절하됐다. 유로화가 6.20%, 엔화가 7.06%다. 호주 달러화는 8.08%로 가장 많이 내렸다. 이런 전방위적인 통화 약세는 주로 트럼프의 재집권을 앞두고 글로벌 달러 강세가 무차별적인 영향을 끼친 결과다. 최근 JP모건이 산출하는 신흥국 통화지수도 올해 10월 후 5% 넘게 급락했다. 이 추세면 올해 4분기는 2022년 3분기 후 가장 큰 분기 하락률을 기록할 예정이다. 최근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뉴욕 증시와 타국채대비 높은 수익률을 주는 미 국채를 감안하면 미국 자산 외에 투자 대안은 잘 안 보이는 셈이다.

한국(빨강), 미국(파랑), 중국(녹색), 일본(보라), 독일(노랑)CDS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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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외신인도를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소폭 상승하는 데 그치고 있다. 국가별 CDS 프리미엄에 따르면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거래된 5년물 한국 CDS 프리미엄(마킷 기준)은 36.09bp로 전날보다 0.60bp 하락했다. 비상계엄 사태 당일 36.94bp까지 올랐다가 이후 소강상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75에 육박했던 수준과 현재 중국이 61.28, 미국이 31.98인 점을 비교하면 어느 수준인지 판단이 선다. 일본과 독일은 19.87과 12.08로 더 낮다. 우리나라 CDS의 움직임이 이렇게 제한적인 것은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에 한국의 위상 변화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 불확실성 속에서도 외국인의 채권 수요가 견조하다는 점도 나타났다. 이달 12일 1조원을 웃도는 외국인의 채권 순매수 기록은 지난 10월 28일(1조6천454억원) 이후 1개월여 만에 최대다. 이럴 때일수록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외환시장 선진화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위한 제반 추진과제를 묵묵히 수행하는 게 원화 가치의 장기적인 안전판 확보에 필요한 방향이다. 기존 약속의 이행이야말로 바로 대외신인도를 쌓는 길이어서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최빈국에서 민주주의와 경제 번영을 동시에 달성한 나라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경제학자들은 한국을 대표적인 성공사례라고 평가한다. 그동안 원화는 수많은 우여곡절에서도 당당히 살아남았다.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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