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美정부 대상 2.8조 유증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슬롯커뮤니티MBK "경영권 방어용·충실의무 위반·주총결의 사안"

고려아연 "구체적·합리적 경영상 필요에 따라 사업 추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인포맥스) 김학성 기자 = "최윤범 측은 어떻게든 정기주주총회에서 채권자(영풍·MBK파트너스) 측 이사가 다수 선임되는 것을 저지하고자 갖은 궁리를 했습니다. 그러더니 미국 내 아연제련소 건설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허용되지 않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라는 위법행위를 감행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영풍[000670]과 MBK파트너스는 전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 고려아연[010130]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지난 15일 앞으로 4년간 74억달러(10조9천억원)를 투자해 미국에 제련소를 짓겠다면서 미국 정부와 기업, 고려아연이 출자하는 외국 합작법인을 상대로 2조8천500억원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MBK는 자신들의 의결권을 희석하려는 최윤범 회장의 술수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실제로 외국 합작법인에 신주(10.6%)가 발행되고 이를 최 회장 우호 지분으로 분류하면 지분율은 영풍·MBK(41%)와 최 회장 측(38.5%)이 대등해진다.

슬롯커뮤니티MBK가 가처분을 인용해달라며 제시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이들은 이번 신주발행이 최 회장의 지배권 방어를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고, 이사의 충실의무 및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했으며, 중대 거래임에도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건설 투자
[출처: 연합뉴스]

◇ "신주발행 목적은 경영권 방어…그 외는 허울"

슬롯커뮤니티MBK는 상법과 대법원 판례를 들어 지배권 방어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법은 주주가 아닌 자에게 신주를 발행할 수 있는 조건을 신기술 도입과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로 제한한다. 대법원 판례는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영풍·MBK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유효하려면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 침해가 정당화될 수 있을 정도의 경영상 목적이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풍·MBK는 "이 사건 신주발행의 주된 목적은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에 있을 뿐이고, 그 외 경영상 목적이라고 내세우는 사정들은 모두 이를 감추기 위한 허울"이라고 지적했다.

◇ "특정 주주에만 이익…이사 충실의무 위반"

영풍·MBK는 올해 7월 개정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도 꺼냈다. 이번 신주발행이 최 회장 등 특정 주주에게만 이익이 되고, 그 외 전체 주주에게는 손해를 끼친다면서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전체 주주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나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 사채 발행 등 대안적인 자금 조달 방법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신주발행을 꼭 연말까지 마쳐야 했던 긴박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슬롯커뮤니티MBK는 이사회가 이번 사안의 복잡성과 중대성에 비례하는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12일 저녁 이사회 소집을 통지한 뒤 15일 이사회를 열어 결의했는데, 이에 대해 슬롯커뮤니티MBK는 "이사에게 부여된 검토·심의 권한을 사실상 박탈한 것"이라며 "실질적인 충실의무를 전제로 한 경영 판단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슬롯커뮤니티MBK는 이번 사건이 이사의 주주충실의무가 7월 시행된 이래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이사의 충실의무가 직접적으로 문제가 된 최초의 사례라면서 법원이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중대 거래는 주주총회 특별결의 거쳐야"

상법은 회사의 영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정한 거래에 대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요구한다. 슬롯커뮤니티MBK는 고려아연의 이번 미국 제련소 투자를 단순히 이사회 결의로 결정할 수 없고,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슬롯커뮤니티MBK는 고려아연 총자산의 70%에 육박하는 10조9천억원을 투자한다는 점, 국내 거점인 온산제련소와 사업 환경이 상이한 미국에서 온산제련소 규모 절반에 달하는 신규 제련소를 새로 시작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를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요구되는 거래로 봐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슬롯커뮤니티MBK는 해외 합작법인에 대한 신주발행과 미국 제련소 건립 등을 단일한 결합거래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슬롯커뮤니티MBK는 "적어도 사업에 관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친 이후 이를 실행하기 위한 신주발행 역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출처: 고려아연]

◇ 고려아연 "구체적·합리적 경영상 필요로 사업 추진"

고려아연은 전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슬롯커뮤니티MBK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례적인 투자 구조에 대해서는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의 공고한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했던 구조"라고 했다.

또 이사회 당일과 별도로 이틀에 걸쳐 4시간 이상씩 안건 설명회와 질의응답을 진행했으며, 이 자리에는 슬롯커뮤니티MBK가 공동 추천한 사외이사도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이사회 당일에도 7시간 동안 이사 전원이 참석해 방대한 내용을 검토했다고 덧붙였다.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 정책에 따른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미국 내 제련소 건설이라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경영상 필요에 따라 이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처분 사건을 판단할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오는 19일 오전 9시50분 심문기일을 연다.

hs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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