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세간에 'T의 공포'라는 말이 유행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상대국을 상대로 부과한 어마어마한 관세(Tariff)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 부과 이후 금융시장에 부작용이 생기고, 동맹과 우방의 개념도 사라진 채 각자도생의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관세의 불확실성이 얼마나 영향을 줄지, 어디까지 파장이 갈지, 언제 끝날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유무역에 길든 시장경제는 방향을 잃고 헤매는 형국이다.
세상엔 여러 가지 종류의 공포가 있다. 경기침체(Recession)를 뜻하는 R의 공포에서부터 인플레이션을 뜻하는 I의 공포, 물가하락(Deflation)의 D의 공포, 최근 들어선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S의 공포(Stagflation)까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우리는 그동안 온갖 공포를 경험하고 극복하며 지나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 곁에 다가온 T의 공포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공포다.
일각에선 T의 공포를 트럼프(Trump)의 공포라고도 한다. 트럼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에 따라 시장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손바닥 뒤집듯이 말이 바뀌고, 어제 말한 숫자와 오늘 말한 숫자가 다르다. 협상 전략의 하나라고 하는 매드 맨(mad man) 전략이라고들 하지만, 트럼프는 이를 자신은 유연한 사람(flexible)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그럴 때마다 들쭉날쭉한 금융시장 지표를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스트레스와 흰머리는 날로 늘어간다.
관세든, 트럼프든 T의 공포는 이른 시간 안에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달렸는데 두 나라의 스탠스를 봐선 장기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월가에서 협상의 압박을 받고 있다. 그를 지지했던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회장과 헤지펀드의 거물 빌 애크먼 등 금융 거물들이 관세정책을 비판하며 중국과 협상을 서두를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경모드로 일관했던 트럼프가 최근 중국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낸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중국은 자신들이 가진 카드를 모두 활용하며 미국과 협상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 것과 동일한 비율로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물론,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희토류의 대미 수출을 통제하고. 미국산 LNG 수입을 중단하는 등 맞불을 놓고 있다. 미국도 이에 대응해 중국 선박에 거액의 입항료를 부과하려고 계획하는 등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동남아시아를 순방하며 우군 확보에 공을 들였다. 미국의 고율 관세 표적이 된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에 "일방적 괴롭힘에 함께 반대하자"고 촉구하는 한편 무역 투자 협정과 협력 강화를 약속하는 등 선물 공세도 폈다. 한때 으르렁댔던 유럽연합(EU)과도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고 중남미 국가에도 손을 내밀고 있다.
중국은 최근 장관급 통상 대표를 교체하며 미국과의 협상을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 새로 임명된 리청강(李成鋼) 통상 대표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정통한 전문가다. 그는 직전까지 WTO 주재 중국 상임대표를 지냈는데,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한 바 있다. 외신들은 리청강의 임명을 두고 미국을 상대로 한 무역 분쟁 대응을 보다 정교하고 전략적으로 전환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국은 결국 협상에 도달하겠지만 관세 인하는 오랜 협상 끝에 이뤄질 것이며 중국은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협상 타결까지 두 나라가 옥신각신하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 사이에 주식과 채권, 환율 등 시장의 변동성도 커질 것이다. 어두운 터널이 시작됐다. (국제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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