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한국은행이 새 정부 출범을 코앞에 두고 무분별한 건설경기 부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경고를 쏟아냈다.
한은은 "시멘트 덩어리 지어봐야 도움이 되겠냐"며 건설경기 부양을 통한 경기 살리기가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의 관세 전쟁과 국내 건설경기 부진으로 올해 성장이 0%대에 그칠 것으로 보이지만, 유동성 투입을 통한 부양은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리는 내렸지만…온라인카지노 총판부양 경계 발언 '한바닥'
한은은 이날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2.5%로 인하했다. 또 추가 인하도 시사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월에 시사했던 연간 총 2~3차례보다는 인하 폭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통화 완화 정도를 더해가면서도 한은은 부동산 시장으로의 초과 유동성 유입에 대해 강경한 우려를 드러냈다.
이지호 한은 조사국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경기 부진 때 당장 건설을 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면서 "그런데 필요하지 않은 시멘트 덩어리나 공항 같은 것 짓는 게 이후 우리나라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건설 경기 지원을 위해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규제로 묶여 짓지 못하는 공장 등 향후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투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웅 부총재보도 "온라인카지노 총판 부문이 우리 국내총생산(GDP)의 14.2%를 차지하는데, 다른 나라들이 11% 정도를 차지한다는 점을 보았을 때 비중이 높은 편"이라면서 "지방이나 이런 곳에 더 짓는다고 경제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향후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AI) 등에 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빠지지 않았다.
현재 건설경기의 침체가 과거 과잉투자가 조정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인 만큼 인위적으로 이를 막아서는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지난 몇 년간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과도하게 투자해 놓은, 특히 지방주택이 굉장히 많이 공급돼서 지금 조정되는 과정에서 건설경기가 나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재정과 이자율을 통해서 다시 막 올리자, 이런 이야기는 다른 한편에는 지난번에 부동산으로 확 뛰어서 올라간 것을 조정하지 않고 또 가자는 얘기"라면서 "언젠가는 다시 조정돼야 하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팬데믹 초저금리의 아픈 기억…"되풀이 안 돼"
한은이 이처럼 경고를 쏟아낸 배경은 팬데믹 이후 초저금리가 불러온 부동산 버블이라는 뼈아픈 경험 탓이다.
2020년 팬데믹 위기가 터지자 한은은 기준금리를 1.25%에서 0.5%까지 빠르게 내렸고, 2021년 7월까지 이를 유지했다.
2020년 0.7% 역성장했던 경기를 어느 정도 되살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폭발적으로 오른 부동산 가격과 동반해 늘어난 막대한 가계부채는 지금까지도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작용 중이다.
현재 상황도 수도권만 보면 팬데믹 위기 시점을 연상케 한다.
한은 기준금리는 3.5%까지 올랐던 데서 지난해 8월부터 시작해 이달 2.5%까지 비교적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중이다.
추가 인하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이 총재는 기준금리가 1%대로 다시 떨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금은 크지 않다"면서도 "경기 상황을 보면서 단기적으로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문을 닫지는 않았다. 과거 이 총재는 "1%대 기준금리는 당분간 기대하지 말라"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반면 서울지역 부동산 가격은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재지정 등 관련 당국의 방어에도 상승세가 쉽게 잡히지 않는 중이다.
더욱이 6월3일 조기 대선 이후 출범할 새 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재정지출 확대에 나설 경우 초과 유동성 공급이 자칫 부동산 가격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금리를 낮추더라도 최대한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한은의 입장이다.
이 총재는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클 경우에는 유동성 공급이 투자 등 경기 회복보다는 자산가격 상승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고, 이것이 코로나 때 경험한 사실"이라면서 "모든 금통위원이 강조하는 것이 특히 서울지역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 한 번 더 보면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데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과거의 잘못을 다시 하지 않는 것이 새 정부의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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