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번에도 문제는 경제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권을 다시 거머쥔 이유는 조 바이든 정부 때 지속된 고강도 인플레이션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바이든의 경제 실정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어렵고 복잡한 경제지표가 아니라 슈퍼마켓에서 베이컨과 달걀이 얼마에 팔리고 있는지, 장바구니 물가가 몇 % 올랐는지, 실감 나게 보여주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 민주당 경제정책 비판하는 트럼프

여론조사기관에선 선거 직전까지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지만, 실제 바닥 민심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현지 전문가들 상당수는 이미 트럼프의 승리를 점쳤고, 그 기저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중산층과 서민의 분노가 있었다. 미국 밖에선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슬로건을 주목했지만, 미국 내에선 생활물가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선거를 관통하는 핵심 이슈였다. 젠지(Gen Z) 세대로 알려진 청년층들도 경제문제를 가장 중요한 이슈로 생각하고 투표했다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는 일자리와 물가 해결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보여주며 분노로 가득 찬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대한 장벽을 세워 불법 이민자를 막아 미국인의 일자리를 지키고, 민생에 부담이 되는 세금을 깎아 주고, 밖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엔 관세를 매겨 미국의 기업을 보호하겠다는 달콤한 말은 미국 유권자들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반대로 이번에 정권을 내준 민주당은 치명상을 입었다. 대통령 선거, 상·하원에서 모두 참패했고 특히 텃밭으로 여겨졌던 뉴욕 등지에서도 민심이 돌아선 것이 확인돼 4년 뒤 회생 여부를 기약하기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자신들의 주 지지층인 유색인종과 서민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해리스 잡은 손 들어 보이는 바이든

선거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1992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을 들고나온 이후 선거에서 경제문제가 가장 뚜렷하게 판세를 좌우한 이슈가 이번 선거다. 이러한 경향은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고 있는 세계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올해 치러진 선거에서 인플레이션과 경기 악화가 가장 큰 이슈였으며 집권당이 모두 참패하는 기록을 남겼다. 영국의 보수당은 총선에서 노동당에 정권을 넘겼고, 일본 자민당은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프랑스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총선이란 승부수를 던졌지만, 그가 이끈 중도 연합은 2위에 그쳤다.

미국 대선 결과는 앞으로 세계정세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미국은 오로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특히 경제문제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날 것이다. 안보도 경제이익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고, 명분보다 실리를 챙기는 대외관계를 설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맹보단 돈이 우선시 되고, 이념보단 실리와 이익이 우선시 될 것이다. 이번에 확인된 미국의 민심은 이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고,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표를 얻으려면 그 민의를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됐다.

최근 10년간 한국 생활물가지수(붉은선)와 소매판매액(푸른선)

미국 대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여기에 있다. 국민의 선택을 근간으로 하는 정치의 본질은 경제문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난 이후 국민들의 소비 여력이 급감했다. 얇아진 국민들의 지갑은 자영업 붕괴로 이어졌고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와 내수 침체를 유발했다. 내수 침체를 만회했던 수출도 힘이 꺾여 돌파구를 찾기 힘든 상태다. 이대로라면 정말 1%대, 아니 그 이하의 경제성장률도 보게 될지 모른다.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한 골든타임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데 여의도 정가는 경제와 무관한 주제를 놓고 본격적인 정쟁에 돌입할 태세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보다 어쩌면 이게 더 무서울지 모르겠다.(편집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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