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벤트 사칭, 11번가 후정산 허점 노려…미정산액만 30억
주식·코인 투자 손실 메우려 범행 규모 키워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DB증권의 한 직원이 10년 가까이 회사 명의를 도용해 355억원에 달하는 상품권을 사들인 뒤 이를 현금화해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직원은 전자상거래 업체의 후정산 시스템 허점을 이용해 소위 '돌려막기' 방식으로 범행을 이어왔으며 증권사 내부통제 시스템은 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대구 서구)에 따르면 DB증권은 최근 내부감사를 통해 직원 박모(50) 씨가 2016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약 10년간 회사 이벤트를 사칭해 상품권을 대량 구매한 사실을 적발했다. 박 씨가 구매한 상품권 총액은 약 355억원에 달하며, 현재까지 미정산된 금액만 30억원 수준이다.

◇'돌려막기'로 355억 구매…투자 손실에 범행 눈덩이
박 씨는 전자상거래 업체 11번가의 법인 대상 기프티콘 판매 시스템을 악용했다. 구매 대금을 익익월에 결제하는 후정산 방식과 정산 입금 주체를 철저히 확인하지 않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그는 회사 명의로 10만원권 신세계 상품권을 대량 구매해 자신과 아들의 휴대전화로 발송한 뒤, 이를 지류 상품권으로 교환했다. 이후 상품권 매매업체를 통해 수수료를 떼고 현금화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1월 구매 대금은 2월에 새로 구매한 상품권을 현금화한 자금으로 3월에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은 주식과 가상자산 투자, 생활비 등에 사용됐다. 그러나 투자 손실이 커지면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상품권 구매 규모를 눈덩이처럼 불려온 것으로 조사됐다.
DB증권이 추산한 미정산금액 30억원의 사용처는 상품권 현금화 손실 10억~14억원, 코인 투자 손실 7억7천만원, 주식 투자 손실 3억5천만원, 생활비 5억원 등이다.
◇10년간 몰랐다…무너진 내부통제 시스템
이번 사건은 DB증권의 허술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드러냈다. 사고가 장기간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우선, 계약 및 ID 관리가 부실했다. 박 씨가 사용한 11번가 구매 ID는 과거 회사 이벤트 종료 후 즉시 폐쇄됐어야 했지만, 사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개인적인 유용이 가능했다. 또한 박 씨가 개인 이메일로 인보이스를 받고 개인 계좌로 대금을 송금하는 방식이라 회사 자금 흐름과 무관해 내부 결재나 회계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인감 관리 역시 허술했다. 박 씨는 2017년과 올해 4월, 11번가 측에 대금 정산 지연을 해명하거나 결제일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회사 법인 인감을 무단으로 도용해 허위 공문을 작성한 사실도 확인됐다. 인감 날인 시 문서의 진위를 철저히 확인하는 절차가 미흡했던 것이다.
해당 직원이 10년간 한 부서에서 장기 근무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순환근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업무에 대한 객관적인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기 어려웠던 환경이다.
◇뒤늦은 수습과 개선책…책무구조도 책임 규명은 '난항'
DB증권은 지난달 15일 사건을 인지하고 23일 박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하고 금융감독원에 사고 사실을 보고했다. 또한 박 씨의 자산 약 7억원을 확보해 11번가 측에 일부 변제 조치했다.
사후 개선 방안으로는 ▲개인 ID 방식의 상품권 거래 전면 금지 ▲거래업체 정기 점검 및 발송내역 전수조사 ▲인감 날인 시 준법감시부서의 문서 적정성 점검 의무화 ▲직무순환제도 적극 시행 등을 내놨다.
한편, DB증권은 이번 사고 책임자를 특정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발생한 관리 부실이라 특정 임원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DB증권은 우선 임원 공통 책무인 '소관조직의 금융사고 예방 책임'을 적용하고, 향후 책무구조도에 '계약 체결·유지 및 사후관리' 책무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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