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상장사들이 자기주식(자사주)을 최대주주나 계열사에 처분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액주주 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법은 아니지만 사실상 '지배력 강화'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화투자증권

17일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대주주 또는 계열회사에 자기주식을 처분하는 행위가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이 같은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엄수진 연구원은 "회사가 보유한 자기주식을 특정인에게 처분하는 것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같이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을 희석시킨다"며 "경영권 방어 등 특별한 사업적 시너지 없이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하게 활용될 경우 소액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행 상법상 자사주 처분은 이사회 결의만으로 상대방과 방법을 정할 수 있어 기존 주주 배정을 원칙으로 하는 신주 발행보다 절차가 간편하다. 이 때문에 자사주 처분이 주주 평등의 원칙을 침해하고,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 및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쟁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올해도 잇따른 '최대주주' 자사주 매각…지배력 강화 포석

올해 들어서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총 7개사가 최대주주나 계열사에 자사주를 처분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조그룹의 경우 사조대림과 사조산업이 계열사와 최대주주에 자사주를 넘겼다.

KPX홀딩스는 지난 4월 양준영 회장에게 자사주 1만7천600주를 매각했다. 이로써 양 회장의 지분율은 11.77%에서 12.19%로 상승하며 최대주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회사는 불과 한 달 전 보고서에서 '자사주 처분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나, 이를 번복하고 개인 최대주주에게 자사주를 넘겼다.

화승코퍼레이션의 최대주주인 현지호 부회장 역시 자사주 취득을 통해 지분율을 35.44%에서 40.43%로 5%포인트 가까이 늘렸다. 헥토이노베이션도 보유 자사주 전량인 69만9천여주(5.33%)를 이경민 최대주주에게 처분, 이 최대주주의 지분율은 24.44%에서 29.77%까지 확대됐다.

반면 자사주 매각 계획을 철회하고 소각으로 선회한 사례도 있다. 솔루엠은 지난 4월 전성호 대표이사 회장에게 자사주 119만주를 매각하려 했으나, 처분 가격이 스톡옵션 평균가보다 낮다는 점과 회사의 사업기회 유용 논란이 일자 계획을 취소하고 해당 주식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제도 개선 필요"

해외에서는 자사주 처분에 대해 국내보다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영국은 자사주 처분 시 신주 발행과 동일하게 기존 주주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며, 일본은 불공정한 자사주 처분에 대해 주주가 무효의 소를 제기하는 등 구제 수단을 마련해두고 있다. 독일은 원칙적으로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제3자에게 자사주를 처분할 수 있다.

엄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에도 경영진이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자사주를 처분하면 이사의 신인의무 위반에 해당해 민사소송을 통한 사후 구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개인 최대주주나 계열사에 자사주를 처분하는 것은 부당지원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며 "현 정부가 공약으로 제시했던 자사주 소각 의무화(예외적 보유 허용)가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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