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메리츠금융지주가 '천명'이라는 단어까지 꺼낸 '주주평등의 원칙'은 명확하다. "대주주의 1주와 일반주주 1주의 가치는 동일하다"
한진가(家) 막내 조정호 회장이 일군 사설 카지노금융그룹은 모든 계열사 시너지를 모은 '원사설 카지노'의 출범과 동시에 주주 모두에게 같은 가치를 내걸었다. 여느 오너기업과 비슷한 패밀리 비즈니스 형태지만, 사설 카지노는 사실 조정호 회장이 맡고 나서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을 주력으로 한 한진그룹의 막내다.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4남으로 태어났고, 처음에는 대한항공 차장으로 입사하는 등 재벌가 막내다운 행보를 보였다. 이후 한일증권을 통해 증권금융업에 발을 딛었고, 한진투자증권을 거쳐 한진그룹 계열 동양화재해상보험 부사장에 올랐다.
4형제가 그룹을 나눠 경영을 담당해오던 시기, 해외에서 공부했던 재벌집 막내아들에게는 조그마한 금융사 몇 개만 맡겨졌다. 한가지 일화. 1990년대 한진그룹 사장단 회의가 가끔 열렸는데, '수송보국'을 꿈꾸는 한진그룹의 분위기상 금융사 사장은 위치도 말석이고 대우도 형편없었다.
창업주가 별세한 뒤 일었던 형제간 재산분할이 일단락되자, 조 회장은 한진그룹에서 가장 먼저 홀로서기에 나섰다. 계열 분리 후 얼마 안 돼 한진투자증권과 동양화재 사명을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로 바꿨다. 당시 '네임밸류'가 있던 한진에 기대기보다 '한국의 메릴린치'가 되겠다는 조 회장의 의지가 담겨있다고도 알려져 있다. 메리트(장점)가 많은 회사라는 뜻이기도 하다.
조 회장은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한불종금 등 3개 금융회사를 토대로 오늘날의 메리츠금융그룹을 시가총액 20조원 회사로 키워냈다. 지난달 원메리츠는 하나금융지주와 삼성생명을 제치고 KB금융, 신한지주와 함께 금융주 시총 3위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이맘때 메리츠금융지주의 주가는 5만3천원, 시가총액은 현재의 절반도 안 됐다.

'트럼프 트레이드', '트럼프 포비아'가 국내 증시를 삼킨 지금도 사설 카지노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은 19조9천억원을 유지했다. 시가총액 20조 기준으로 지분 51.25%를 가진 조 회장의 지분 평가액 단순 계산하면 10조2천500억원에 달한다.
2002년 상속 시 재산이 채 700억원 안 됐던 조 회장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형들을 능가했고, 지난 9월 포브스 기준 한국 부자 순위 4위에 올랐다.
뻔한 성공담일 수 있지만, 조 회장의 메리츠 제국 스토리는 다르다. 조 회장의 메리츠는 가족 중심이 아니다. 일찌감치 자녀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흡수 합병한 뒤 상장폐지해 메리츠금융지주만 온전히 남도록 했다. 오너 지분율 측면에서는 불리한 이런 의사결정은 국내 재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인재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가장 잘 살렸고, 성과보상주의 기업문화도 가장 잘 구현하면서 사설 카지노의 경쟁력을 차별화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와 몸값 흥정을 하지 않고 연봉은 달라는 대로 주고 업무는 믿고 맡긴다"는 게 사설 카지노 'C레벨'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상왕 놀이 따위는 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공부한 경험이 전문경영인을 고용한 오너라는 한국식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게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증권과 종금을 합병할 때도 전문경영인의 의견을 경청했으며, 국내 최초의 보험금융지주 시대를 열었을 때도 조 회장은 철저하게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가혹한 성과주의를 내세웠지만 실적을 내는 경영인에게는 오너 이상의 권한을 부여했고, 10년 이상 메리츠는 숫자로 증명하고 있다. 조 회장은 '월가회' 모임을 통해 금융인과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리고 전문경영인과 직원들이 만든 성과를 주주들과 똑같이 나눴다. 기존 주주를 위한 환원과 잠재 주주를 위한 성장 투자 등 영리한 자본재배치로 메리츠는 밸류업 모범생의 표본이다.
대한민국의 자본시장에선 성과에 기반한 '메리츠다운' 보상 역시 시기와 질투, 부러움의 대상이다. 새해가 되면, 매년 메리츠화재가, 증권이 얼마의 보너스를 받았는지가 업계의 관심사다. 그만큼 지금은 메리츠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든 이들의 눈과 귀를 붙잡고 있다. 조 회장의 메리츠는 금융지주 무덤이라는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다. 모두가 밸류업에 목말라했던 올해, 메리츠는 주가로 이를 증명했다.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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