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등극한 립부탄(Lip-Bu Tan)은 2만1천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본격 양산에 돌입하는 1.8나노 공정 성능과 미래 비전을 홍보하는 연례행사 '인텔 파운드리 다이렉트 커넥트(Intel Foundry Direct Connect)' 바로 며칠 전이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인력난 때문에 전문 학과도 만들고 인재 공급을 늘려달라고 연방정부에 읍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금, 전체 직원의 20% 가량을 해고한다는 것이다. 전임자 팻 겔싱어 CEO 역시 작년 이사회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1만5천명을 감원했다. 이대로는 회사에 사람이 남아나겠냐는 푸념도 나온다.

단지 감원 뿐이라면, 삼성전자와 TSMC 등 주요 경쟁 기업들은 속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4월 24일 립부탄 CEO의 전 직원 대상 서한(Letter)을 읽어보면, 식은땀이 흐른다. 어쩌면 정말로 인텔이 부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관료제 혁파'다. 립부탄 CEO가 직접 밝히기 전까지 많은 이들이 몰랐고 또 놀랐던 부분은, 인텔의 임원 성과평가지표(KPI)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매출·영업이익이나 주가가 아닌 바로 '내 밑에 부하직원이 몇 명인가?'였다는 것이다. 사업은 등한시한 채 내부 정치를 하고 조직 크기만 늘리면 회사야 어찌되든 계속해서 수십, 수백억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대부분 팀 조직의 결재 역시 최소 8단계였다고 한다. 시한을 다투는 결재 문서를 한번 상신하면 팀장, 과장, 차장, 부장 등을 거쳐 일주일은 넘게 걸렸을 것이다. 자칫 실수라도 해서 수정 기안을 해야 한다면 아마 족히 보름, 혹은 한달여는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의무·정례 보고서, 회의, 사내 교육 등 내부 실사 결과 하루 중 본질적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이 터무니 없이 적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 대기업에서도 하루 8시간 중 2시간 업무를 보는 사람이 최우수 사원이라고 보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바로 '재택근무의 종말(Returning to office)' 선언이다. 즉, 지금까지는 주3일 출근제였다면 이제부터는 주5일 출근이 의무화된다. 매일 모든 직원이 현장에서 만나야 소통이 활발해지고, 민첩하고 적확한 의사결정을 도출할 수 있다는 개인적 신념이라고 한다. 다시금 전 직원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야근까지 불사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실 이는 피터 틸(Peter Thiel)과 일론 머스크(Elon Musk) 등 '페이팔 마피아'도 주창한 바이자, 미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배경이기도 하다.

2018-2025년 기간 인텔 및 엔비디아 매출액·순이익 추이 (백만 USD)
※출처: Intel & Nvidia 10-K Annual Filings

구조조정. 비단 반도체 산업 뿐 아니라 트럼프 정부가 전 국가적으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일론 머스크가 지휘하던 정부효율부(DOGE)에 따르면, 내년 제250주년을 맞는 미합중국의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 Benefits) 수령 최고령자는 360세가 넘었다고 한다. 200세 이상 수령자도 많은데, 신기한 건 미국의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은 1935년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행정부 시기 도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구성원 일부의 도덕적 해이라기보다는, 국가와 사회 전체의 규율과 기강(Discipline)이 무너진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의 행보에 대한 평가가 서로 갈릴 수 있지만, 많은 美 국민과 주요 기업의 책임자들 역시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美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 Benefits) 수령자 연령 분포 (100세 이상)
※출처: 2월 17일 일론 머스크 X 포스트

비만과 나태, 오만이라는 비판을 받던 미 연방정부와 공룡 기업들은 이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뼈를 깎는 각고(刻苦)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인텔의 새로운, 혹은 마지막 CEO가 될 수도 있다는 보도와 함께 사령탑을 쥔 립부탄은 자신의 성공적 커리어를 모두 망칠 수도 있는 사장직을 맡은 결심에 대해, 바로 수 백년 이후에도 회자할 실리콘밸리의 적통이자 신화의 부활, 즉 '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을 완수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곧 제7공화국 시대를 맞게 된다. 동북아 경제 성장의 신화, 한강의 기적을 재창조할 수 있는 변화는 가능한 것일까. 영화 '이퀄라이저(The Equalizer)'에서 주인공 덴젤 워싱턴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고통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을 바꾸는 고통, 다른 하나는 그냥 아픈 고통(There are two kinds of pain in this world. The pain that hurts, the pain that alters.)". 새로운 시대, 변화를 위한 고통을 택할지 아니면 문제를 직시하지 않은 채 기약 없는 기나긴 고통의 세월을 살아갈 것인지. 선택의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 것 같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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