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는 과거 런던과 파리에서 있었던 귀족과 빈민 사이의 극심한 증오와 분노를 다룬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에서 당시 사회 분위기를 이같이 일갈했다. 그로부터 160여 년이 지난 현대에도 변함없이 상류층과 서민층의 빈부격차가 화두가 되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 많이 회자하는 말은 'K자형 경제(K-shaped economy)'다. 부유층과 빈민층의 경제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위아래가 악어 입처럼 벌어지는 K자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미국 상위 10%가 전체 소비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는 점점 벌어지는 양극화와 미국 사회의 구조적 분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달 "경제가 양분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다. 이런 시스템을 방치하면 자본가는 계속 부가 쌓이고, 노동자는 점점 빈털터리가 된다. 현재 미국 상황이 그렇다. 미국의 고소득층은 지난 몇 년간 주식·부동산·암호화폐 등 주요 자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집중적으로 누렸다. 반면 중·저소득층은 팬데믹 당시 지원금과 비축 자산이 소진된 이후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압박에 직면해 있다. 생활비가 치솟으면서 맥도날드 등 서민형 외식 브랜드 매출은 하락하는 반면, 럭셔리 브랜드와 프리미엄 서비스는 호황이다. 이 괴상한 경제 풍경은 K자형 양극화의 전형이다.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은 통상적으로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하지만, 결과적으론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유동성 확대는 금융·자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상위층의 자산 가치를 더 높이지만반면, 서민층의 생활비 부담은 오히려 커진다. 부양책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고, 서민에게는 더 높은 물가를 되돌려준다는 불편한 진실이 반복되는 셈이다.

IMF(국제통화기금)는 2020년 보고서에서 재정지출 확대는 단기적으로 성장을 돕지만,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을 동반할 경우에는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2022년 발표한 팬데믹 보고서에서도 미국 팬데믹 재정지출의 68%가 자산 시장 부양으로 귀결됐고, 중산층·서민층은 주식·부동산 보유량이 적어 '상대적 박탈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AI) 열풍은 자산시장을 더욱 과열시켜 상위계층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고 있다. AI 혁명으로 매그니피센트 7 주가가 폭등하면서 주식을 가진 부유층의 자산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소외된 서민 계층의 자산은 제자리걸음이다.

AI로 인한 해고의 증가와 고용 불안심리의 확산은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우려된다. 기업들은 경기 둔화와 비용 절감 압박을 이유로 채용을 줄이고, 비용 절감의 핵심 수단으로 AI 도입에 따른 자동화·효율화·인력 구조조정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간층 일자리가 잠식되고, 비숙련·사무직 계층은 일터에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AI는 상위층에는 투자 수익과 효율성이라는 혜택을 주지만, 하위층에는 실직과 소득 감소라는 부담을 안겨주는 새로운 양극화 촉발 장치가 되고 있다.

양극화 문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부동산 등 자산을 가진 계층은 고금리 시대에도 재산이 계속 늘어나지만, 서민층은 소득만으론 감당이 안 되는 주거비·대출이자·교육비에 압도당하고 있다. 중소기업·자영업의 취약성은 심각한 상황이며, AI 도입이 확산할 중산층의 일자리는 잠식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양극화 해결이 대선이슈가 될 정도로 뜨거운 주제였다. 그러나 요즘엔 양극화 해결의 동력이 떨어진 것 같다. 더 이상 양극화가 굳어지지 않도록 성장동력의 확충과 안전망 확보를 통해 불평등 해소의 길을 찾길 기대한다. (이장원 선임기자)

jang73@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본 온라인 카지노 주소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0시 28분에 서비스된 온라인 카지노 주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