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인포맥스)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해외 투기자본과 국외 경쟁기업 추천 인사가 감사 겸 이사에 선임되는 등 우리 군의 작전회의에 적군이 참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2020년 10월 포럼 출범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최대 3%로 제한(3% 룰)하는 상법 개정을 두 달 앞둔 때였다.
이어 그는 상법 개정 시 국내 15대 상장사 가운데 13곳(87%)에서 헤지펀드가 추천한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국내 투자자가 얼마나 동조하느냐에 따라 15개 기업 모두가 사정권에 든다고도 했다. '합산 3% 룰'을 가정한 분석이었다.
상법 개정안이 2020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완화된 3% 룰을 적용하도록 했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3%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3%를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재계는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분 쪼개기 등으로 20% 이상 의결권을 확보한 상황에서는 기업들의 방어권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수준"이라며 우려를 거두지 않았다.
이 같은 상법 개정 이후 4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우리 군의 작전회의에 적군이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단기 차익에 혈안이 된 헤지펀드나 외국 경쟁기업이 추천한 이사가 우리 기업 이사회에 침투한다니 겁나는 이야기다. 이사의 권한을 이용해 핵심기술을 바다 건너로 빼돌릴 것만 같다.
그런데 주주들이 바보인가. 기업가치를 파괴할 것이 뻔한 이사 후보를 지지할 리 없다. 사람들은 '내 돈'이 걸린 문제에 민감하다.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이사회의 의사를 거슬러 선임된 이사는 거의 없다. 3% 룰로 인해 한국 자본시장이 헤지펀드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는 재계의 주장은 엄살로 드러났다.
최고의 경영권 방어는 주가 관리다. 외부 세력이 유의미한 수준의 지분을 사 모으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주주들이 성과를 낸 현 경영진과 이사회를 지지하게 만든다.
이미 메리츠금융지주[138040]가 답을 보여줬다. '대주주의 1주와 일반주주 1주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철학에 기반해 경영하니 주주들은 오히려 현재의 리더십이 바뀌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다.
다시 상법 개정이 추진된다. 이번에는 3% 룰을 적용할 감사위원 수를 1명에서 복수로 늘리고, 사외이사 선임에 적용되던 3% 룰을 개별에서 합산 기준으로 강화한다.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단기적 불확실성은 있겠지만,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긍정적 효과도 못지않을 듯하다. (산업부 김학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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