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틱시스자산운용 산하 투자회사 "은행서 시작된 '밸류업 피어 프레셔' 재벌로 확산될 것"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지난 10년 넘게 한국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비중 확대(Overweight)'로 돌아섰습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향후 5년 이상 시장을 이끌 동력이 될 것이란 기대 때문입니다."
운용자산(AUM) 1천150억 달러(약 169조 원)에 달하는 미국 성장주 투자의 대가 WCM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가 한국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WCM은 운용자산 1조4천억 달러 규모의 나틱시스자산운용(Natixis Investment Managers, NIM) 산하 투자회사다. NIM은 프랑스 최대 금융 그룹 중 하나인 Groupe BPCE에 속해 있다. 글로벌 '큰손'의 자금이 한국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셈이다.
마이클 티안(Michael Tian) WCM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서울에서 진행한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는데 이는 분명 밸류업 프로그램에 기인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WCM 내에서 신흥국(EM) 펀드를 총괄하는 티안 매니저는 EM 펀드에서 한국 비중을 확대했다. 그는 이번 결정에 대해 "단순히 밸류에이션 매력 때문만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초입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인이 본 韓 거버넌스…"과거엔 너무 창의적이었다"
제3자의 눈에 비친 과거 한국 시장은 투자하기 까다로운 곳이었다.
티안 매니저는 과거 한국 기업들의 주주 비친화적인 행태를 '창의적'이라는 단어로 꼬집었다.
그는 "과거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주 비친화적인 행동을 하는 그룹들을 봐왔다"라며 "계열사 간 거래 등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해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티안 매니저는 "최근에는 주주와 정부가 의심스러운 거래에 제동을 걸고 때로는 거래가 수정되거나 취소되기도 한다"라며 "가장 지독한(Egregious) 형태의 행동들이 줄어들면서 리스크가 낮아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가 지배 구조 개선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는 핵심 기제는 '피어 프레셔'다.
티안 매니저는 "독보적인 지배주주(오너)가 없는 금융지주사들이 먼저 개혁을 수용했고 이제는 모든 은행이 밸류업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며 은행권에서 나타난 피어 프레셔를 언급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재벌 기업으로도 전이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 재벌 그룹이 무언가를 해서 주가가 오르고 혜택을 본다면 다른 재벌 기업들의 개혁을 촉발할 수 있다"라며 "재벌 기업들 사이에서도 이런 피어 프레셔가 작동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 진행 상황에 대해 "5~10년 여정의 '걸음마(Beginnings)' 단계"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혁신적 한국, 거버넌스만 풀리면 '특권적 지위' 누린다"
티안 매니저는 한국을 "과거 행동주의가 거의 제로였던 시장"이라고 정의했다. 그만큼 지배주주의 권한이 절대적이었다는 의미다.
그는 "건전한 자본시장에서는 이해관계자 간의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라며 "아직은 지배주주 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지만, 행동주의가 기업들에 더 주주 친화적인 정책과 독립적인 이사회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도움이 된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오는 2027년 주주총회 시즌에는 (집중투표제 등으로)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되길 바란다"라며 "기업들도 소액주주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 기업들이 가진 펀더멘털 매력은 호평했다. 특히 신흥국 시장 내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특권적 지위(Privileged Position)'를 강조했다.
티안 매니저는 "방산과 조선, 원전 분야에서 한국은 신흥국 중 독보적"이라며 "중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라고 봤다.
그는 "미국과 유럽은 장비가 비싸고 공급망이 원활하지 않지만, 한국은 나토(NATO) 동맹국 등에 첨단 시스템을 공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라고 설명했다.
조선업에 대해서도 "중국이 제재 등의 영향을 받는다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라며 "한국은 선진 기술을 보유하면서도 선진국 대비 합리적인 비용 구조와 탄탄한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은 매우 혁신적이고 똑똑하다"라며 "장기적으로 거버넌스 문제만 해결된다면(Addressed), 다른 모든 요소는 저절로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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