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인포맥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빅컷(50bp 인하)을 일축하는 발언은 파장이 컸다.
파월 의장은 9월 FOMC 기자회견에서 '빅 컷'(50bp 인하)에 대해 "오늘 0.50%포인트 금리 인하에 대한 폭넓은 지지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파월 의장은 금융시장에 여러 시사점을 남겼다.
일차적으로는 연준의 독립성 훼손이 적나라하게 일어난 상황을 정리했다.
대통령의 경제 책사인 스티븐 마이런 미 연준 이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전날 취임하자마자 9월 금리 결정에 참여했다. 이번 회의에서 마이런 이사는 50bp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냈다.
파월 의장은 50bp 빅컷을 압박하는 정부의 의견에 미 연준 내에서는 지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연준의 점도표상에서는 더 이상 금리인하가 필요 없다는 의견도 반영됐다.
대통령의 목소리가 간접적으로 연준의 심장부에서 힘을 얻는 독립성 훼손의 상황을 방어한 셈이다.
또 파월의 50bp 인하에 대한 일축은 시장 혼란을 정리하는 역할도 했다.
가장 큰 부분은 그동안 미국 고용지표 통계 오류를 둘러싼 혼란과 변동성 확대 가능성이 일단락된 점이다.
고용지표 통계가 실제 악화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연준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동안 미 연준이 데이터에 기반해 결정한 통화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요인이다.
잘못된 통계를 보고 금리를 결정해 왔다는 점에서 정책 실기라는 꼬투리를 잡힐 만하다. 이는 통화정책의 신뢰성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이슈다.
파월 의장은 고용지표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 '위험 관리' 차원의 금리인하를 했고, 앞으로도 3회 연속 금리인하가 가능함을 열어뒀다.
그리고 미국 경제가 나쁘지 않아 빅컷이 필요한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
연준의 경제전망 요약에서도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1.6%로 종전대비 0.2%포인트 높아졌다. 2026년과 2027년 전망은 1.8%와 1.9%로 각각 0.2%포인트 및 0.1%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빅컷 대응이 가져올 수 있는 '그만큼 미국 경제가 나쁜 상황', '잘못된 지표에 따른 정책 실기'라는 논란의 빌미를 사전에 차단한 셈이다.
이는 고용지표와 관련한 미국 경기침체 우려를 누그러뜨렸다.
고용지표 통계가 실제로는 악화됐다고 하더라도 25bp씩 3회에 걸쳐 총 75bp 인하로 대응하겠다는 연준의 입장을 확인했다.
오히려 FOMC 하루가 지난 시점에 나온 주간 실업보험 청구건수는 예상치를 밑돌아 고용 우려를 약화시켰다.
금리인하 기대에서 계속 나오던 미국 경기침체 우려는 한숨 돌렸다.
파월 의장의 50bp 발언은 연준 독립성 훼손과 통계 오류에 따른 정책 대응에 대한 논란을 일단락함으로써 통화정책의 신뢰성을 지키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파월 의장은 달러 가치도 사수한 듯하다.
미국 경제가 별로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연준의 전망은 달러화를 지지했다. 글로벌 달러 인덱스는 금리인하 여파로 96대로 떨어졌다 97대로 다시 올랐다.
그동안 외환시장에서 미국 금리인하는 달러 약세로 연결되던 공식은 이번에 방향을 틀었다. 빅컷을 제외한 3회 연속 금리인하는 오히려 매파적으로 읽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일부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달러 숏포지션(매도포지션)을 되감고, 달러 매수에 나섰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경제상황 차이와 관세협상 과정에서 논의된 3천500억달러의 대미 투자 등이 재조명됐다.
달러-원 환율 하락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다시 힘을 얻는 양상이다.
FOMC 결과를 확인하는 동안 원화는 아시아통화 중에 가장 두드러진 약세를 보였다. 연합인포맥스 통화별 등락률 비교(화면번호 2116)에 따르면 지난 17일 이후 2거래일 동안 원화는 1.28% 절하돼 아시아통화 중 절하폭이 제일 컸다.
같은 기간 필리핀페소가 0.91% 절하됐고, 엔화는 0.76%, 대만달러는 0.24%, 태국 바트 0.41% 절하에 그쳤다. 위안화도 0.16%로 소폭 약세였다.
서울환시에서 달러-원 환율은 1,390원대 중반까지 급등하며 1,400원선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원화 약세를 유발하는 미국 관련 리스크 요인들이 어떻게 정리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연준의 통화정책이 미국 정부에 의해 흔들리는 것도 우려 요인이지만, 최근 미국 조지아주의 한국인 비자 관련 구금사태로 보듯 대미 투자 여건도 불안한 상황이다. 한국에 대한 압박이 지속되면 언제든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탓이다.
하지만 달러 매수 심리가 누그러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 연준의 금리인하는 올해 남은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 경제가 너무 견조한 상황이지만 이 기간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아시아 시장으로 자금유입이 일어난다면 달러 매수세가 약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3천500억달러 대미 투자 논란도 만약 한미 통화스와프로 귀결되면서 안정적인 해법을 찾거나, 대규모 해외 조달을 통해 서울환시를 경유하지 않는 여건이라면 외환시장의 불안 요인이 가라앉을 수 있다.
물론 지정학적 위험이나 또 다른 돌발변수가 없어야 한다.(경제부 시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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