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슬퍼랬다고 해야 할까. 이재명 대통령의 SPC 방문 현장은 중계 화면으로 지켜 봤음에도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언성을 높이지도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특유의 집요한 질문으로 연이은 사고의 원인에 다가섰다. 배석한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을 몇 차례 제지하는 모습에서 진솔한 대화를 원하는 이 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SPC 경영진은 이런 식의 대화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대통령의 현장 방문 이후 SPC는 그룹사 대표이사 협의체인 'SPC커미티'를 열어 생산직 야근 시간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8시간 초과 야근제를 폐지하겠다는 의미다. 대통령실은 이를 두고 SPC가 "변화로 답했다"고 평가했다. 강유정 대변인은 "안전을 위한 비용을 충분히 감수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바람을 정한지 이틀 만에 SPC가 변화로 답했다"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기업의 이윤 추구는 어떤 이유도 정당화가 안 된다. 생업을 위해 나간 일터에서 국민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후진적 사고는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 간담회 참석
(시흥=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SPC 삼립 직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 대통령 왼쪽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2025.7.2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hihong@yna.co.kr

이재명 대통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지난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노동 현장에서 더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 국민 앞에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안전을 비용으로 여기면서 필요한 지출을 하지 않는 것은 상응하는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소년공 출신의 대통령은 자기 팔에 남은 산업재해의 흔적을 잊지 않았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런 인식의 굳은 자를 깨는 데 대통령의 행보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이후다. SPC삼립이 마주할 일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자. 작년 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문제가 됐던 양산 빵을 만드는 베이커리 사업부문 매출액은 9천156억원으로 전년 대비 0.6% 감소했다. 영업이익 역시 706억원으로 전년 대비 7.6% 줄어들었다. 회사는 코코아, 버터, 팜유 등 주요 원재료 가격이 지속해 오르면서 환율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이전에는 겪지 못했던 강도의 원가 압력을 받았다고 적었다. 여기에 통상임금 확대로 퇴직급여가 늘어난 것도 수익성 악화의 원인이 됐다. 안전시설 확보 등에 투자해야 하지만 현재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은 셈이다.

이 대통령이 현장에서 지적했던 임금 문제도 있다. SPC삼립의 1인당 평균급여는 2021년 4천800만원에서 2024년 5천200만원으로 8%가량 상승했다. 그런데 생산직 남성의 경우 4천600만원에서 4천100만원으로 오히려 후퇴했다. 가뜩이나 임금이 줄어든 생산직 입장에서 초과 근무시간 축소는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가 급여를 올려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발 관세태풍으로 경기 전망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례 없는 원가 압박에 시달리는 회사로서는 상당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산재 대책 듣는 이재명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산업재해 대책 발표를 듣고 있다. 2025.7.29 hihong@yna.co.kr

이 대통령이 SPC 공장을 방문하기 하루 전 만났던 재계의 인사와 우연히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어쩌면 시대와 맞지 않는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득 9만달러 수준의 산업안전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소득 1만~2만달러 사이의 사회에서나 통할 법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크든 작든 원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인데 물가 당국이 이를 용인하겠냐는 걱정도 했다. 막상 설비투자를 통해 공정을 자동화할 경우 사라지는 일자리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산업재해 추방은 기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흡했던 처벌 규정을 상응하는 수준으로 바로 잡는 한편 기존의 관행을 고치려는 기업을 북돋우는 장치도 필요하다. 생명 존중을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려면 육모방망이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대동세상을 열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국민과의 오랜 약속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본 것이 얼마 만인가 싶다. 그가 바라는 대동 세상이 한때의 꿈이 아니라 지속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치러야 하는 비용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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