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구권에선 적대적 인수합병(M&A)을 M&A의 꽃이라 부른다. 각종 첨단 금융기법과 법률적 지식이 동원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 보니 초대형 M&A 스토리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되기도 한다.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도 한국 M&A 역사에 한획을 긋게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과거 보기 어려웠던 상상 초월 기법이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처분신청을 포함한 법리 싸움도 치열하다.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경영권 탈환 시도에 맞선 고려아연 측의 대응방식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고려아연은 회사 자금으로 자사주 공개매수를 단행했다. 그마저 외부 차입으로 조달한 수조원의 자금을 활용했다.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사들인 것도 모자라 회사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긴급이사회 연 고려아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말 일반공모 유상증자까지 결정한 건 상상 이상이다. 대규모 차입을 해놓고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이를 갚겠다는 심산이다. 주주대상 증자가 아녀서 기존 주주들은 시가 대비 헐값(예정가 67만원)에 주식이 발행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명백한 시장교란 행위다. 기존 주주의 뒤통수를 때린 격이기도 하다. 금융당국은 부정거래 소지가 있다며 전면 조사 의지를 밝혔다. 유증 주간사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이사회의 존재 여부에 의문이 생긴다. 지배주주의 이익에만 매몰된 듯한 이런 의사결정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두산그룹은 또 어땠나. 최근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온 곳이다.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합병 비율이 문제가 됐다.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면서 합병 비율은 이전보다 높아졌지만, 경영진과 이사회에 대한 불만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두산밥캣 소액주주들의 연대 움직임도 활발하다.

사업구조 재편 설명에 나선 두산 3사 경영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계의 자충수다. 두산그룹과 고려아연 사태를 지나면서 대기업 지배주주와 이사회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국민 여론을 넘어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우량주라고 믿고 장기투자하고 있었더니 대주주들이 지배권을 남용해서 물적분할이니, 전환사채 발행이니 해서 알맹이를 쏙 다 빼먹는다"며 "그런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 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한 말이다. 개인투자자의 금투세 폐지 압박에 한발 물러섰지만, 반대급부로 상법 개정 작업에는 더 강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상법 개정 논의는 연말 정기국회에서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의 골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총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회사와 지배주주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현행 상법을 뜯어고치겠단 취지다. 현행법으로는 전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한 이사에게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다. 고려아연과 두산의 사례처럼 시장에 반하고 주주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해도 순간의 비난만 감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단 얘기다. 정부와 여당은 두산그룹 합병비율 산정 문제 등을 의식해 자본시장법 개정 정도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지만, 거대 야당이 강한 의지를 보이는 이상 상법 개정 논의까지 확장할 공산이 커졌다. 지배주주만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잘못 둔 그들의 자충수가 그들에게 재앙으로 되돌아올 조짐이다. (산업부장)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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