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비대칭 탓에 민사소송 대신 형사고발…사법체계 왜곡"

"상법 개정은 26년 만의 정상화…'소송 남발' 우려 과도" 주장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전 국회의원)는 "피해자가 증거를 확보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민사 분쟁이 배임죄 고발로 이어지는 '민사의 형사화' 현상이 만연하다"며 "이를 해결할 핵심 열쇠는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라고 강조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란 재판이 시작되기 전 소송 당사자들이 서로 가진 증거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절차다. 특히 기업 관련 소송처럼 회사가 대부분의 정보와 증거를 독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재판 과정에서 갑자기 증거를 내미는 '증거 기습'을 막기 위한 제도로, 문서 제출 요구, 관계자 증언 청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대표는 2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사의 충실의무 상법개정과 제도개선 과제' 토론회 발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상법 개정, 배임죄, 디스커버리 제도가 모두 연결된 하나의 과제라고 역설했다.

◇ "상법 개정, 26년 만의 정상화…'소송 남발' 우려 과도"

이 대표는 먼저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상법 개정안에 대해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도입됐던 입법 취지를 26년 만에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사외이사제 도입 등은 지배주주를 견제하려는 목적이었으나, 2004년 대법원이 '이사는 주주가 아닌 회사에만 책임을 진다'는 판례를 내놓으며 그 의미가 퇴색됐다"고 지적했다.

재계의 '소송 남발' 우려에 대해서는 "과도한 걱정"이라고 일축했다.

이 대표는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모든 경영 판단이 아닌,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사안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된다"며 "M&A나 유상증자처럼 모든 주주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소송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화그룹 관련 판결에서 이해상충 사안에 경영판단 원칙이 적용된 것을 예로 들며 "오히려 법원이 선관주의 의무와 충실의무를 구별하지 못하는 혼란이 있다"고 꼬집었다.

◇ "'민사의 형사화' 근본 원인은 정보 비대칭…검찰 권한만 비대"

이 대표는 현재 사법체계의 가장 큰 문제로 '민사의 형사화'를 꼽았다.

그는 "기업 관련 소송에서 결정적 증거는 대부분 회사 내부에 있어 개인이 민사소송으로 피해를 입증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검찰의 강제수사권을 활용하고자 배임죄로 형사 고발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사소송에서 증거를 확보할 방법이 없으니 형사 절차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결국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고 검찰의 권한만 비대하게 만드는 왜곡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는 검찰개혁과도 연결된 종합적인 문제"라며 "기업이 검사 출신을 법무실에 채용하는 것도 배임죄가 형사법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SK-LG 배터리 소송도 미국행…'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 시급"

이 대표는 이 같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으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강력히 제안했다. 디스커버리는 재판 전 당사자들이 서로 증거를 공개하도록 하는 절차다.

그는 "최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 한수원과 한전의 소송이 미국에서 진행된 이유는 바로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를 이용하기 위함이었다"며 "이는 우리 사법체계의 공백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피해자들이 '배임죄 고발'이라는 우회로 없이 민사소송 절차 안에서 공정하게 다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소송 비용 증가나 기업 기밀 유출 등 부작용 우려에 대해 "법원이 적극적으로 증거개시 범위를 관리하고 기밀보호명령 등을 활용하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모델을 설계하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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