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축구 감독이 '경기 시간은 900분이냐'고 묻거나, 외과 의사에게 '심장은 오른쪽에 있냐'고 묻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황당함을 넘어 공포를 느낄 것이다.

최근 대한민국 투자자들이 느낀 감정이 그랬다. 경제수장이 '코스피 PBR이 10배 아니냐'는, 한국 증시 역사를 새로 쓰는 수준의 답변이 튀어나왔을 때 말이다. 지식의 부족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그라운드에, 혹은 수술실에 관심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이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돈 옮겼다가 손해 보면 어떡하느냐"는 걱정까지 내비쳤다. 그렇다. 그 위험한 곳에 국민의 돈을 밀어 넣을 수는 없으니 자신들은 안전한 강남 아파트에 돈을 묻어두는 것 아니겠는가. 시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새어 나왔다.

미국엔 'NANC'라는 ETF가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주식 내역을 따라 사는 상품이다. 공화당 버전(GOP)도 있다. 지난해 민주당 의원들의 평균 수익률은 31%, 공화당은 26%로 S&P 500의 24.9%를 모두 웃돌았다. 그러니 아예 ETF까지 나온 것이다. 낸시 펠로시는 70.9% 수익을 올리며 '숙련된 트레이더'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내부 정보 이용 가능성이라는 비판은 따라붙지만, 적어도 그들은 시장을 몸으로 알고 있다.

반면 한국의 고위공직자들은 주식을 3천만 원 이상 보유 시 대체로 백지신탁하거나 매각해야 한다. 이해충돌 방지라는 숭고한 취지지만, 시장과 절연된 온실 속 정책이 이렇게 탄생한다. 평생 부동산만으로 재산을 불려 온 관료가 증시 활성화를 위한 배당소득세를 개편한다. 그들에게 주가지수는 관리해야 할 통계 숫자일 뿐, 재산의 향방을 결정하는 현실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무감각이 낳는 정책의 세밀함 부족에 있다. 왜 좋은 실적에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지, 왜 정부의 야심 찬 발표에도 시장이 싸늘한지를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니 'PBR 10배' 같은 발언이나 '손해 볼까 봐 걱정'이라는 시장에 대한 솔직한 불신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원인은 여기 있을지 모른다. 지정학적 리스크나 낡은 기업 지배구조도 문제지만, 가장 큰 할인 요인은 시장을 믿지도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 관료들이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불안감일 수 있다.

헤지펀드 출신 재무장관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설계하는 정책의 한복판에, 자기 돈 천만원이라도 넣어본 경험이 있는 수장과 대화하고 싶을 뿐이다. (증권부 이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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