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즉, 수출주도형 제조업 육성 정책에는 의외의 비밀이 숨어있다. 바로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계획이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경제기획원이 설정한 수출액 목표가 매년 예상치 못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는 사실과, 높은 수출 금액을 목표했던 분야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곳에서 높은 실적을 올렸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말한다. 원래 가발, 수산물 수출을 많이 하려고 했는데 생뚱맞게 기계, 전자제품 수출이 급증해버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과 도약은 성공했다. 왜 그랬을까.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소위 '군사혁명위원회(국가재건최고회의)'가 등장한 1961년 전후로 국제무역은 과거의 단절을 벗어나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마셜플랜(1947~1951년)으로 20년의 황금기를 맞은 구라파의 소비 증가 역시 한몫했다. 미국, 유럽 등 고소득 선진국의 소비가 급증하며 개도국으로부터의 상품 수입 수요 역시 가파르게 상승했던 것이다.

한국은 군사정권의 퇴장 이후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 재벌 개혁과 경영 구조 합리화, 금융 시장 개방 등 여러 가지 중요 과제들을 대내외적 혼란 속에서도 열심히 진행해 왔다. 1970~1980년대에 비해 사회와 경제의 운영 원리도 보다 투명해졌고, 기업들의 경쟁력 역시 세계 상위 수준을 달성했다. 하지만 왜 실질 성장률은 1%대, 합계 출산율은 0.7명이 되어버린 것일까.

여러 해답과 진단 중 하나는 아마도 '미중밀월(美中蜜月)'이 아닐까. 적대적이었던 두 강대국 관계의 전환점은 미국이 베트남전의 정치적 탈출구 마련과, 소비에트 연방 견제 목적으로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1972년 닉슨과 모택동 주석 만남 이후 1978년 1월 1일, 미중 수교 선언이 발표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대륙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으므로, 곧이어 대만의 국제연합(UN) 추방이 이루어졌다. '미중밀월'의 핵심은 바로, 중국이 소비에트 연방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는 조건 하에 미국이 경제 발전에 필요한 금융 자원과 기술력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하기 전만 하더라도, 미국의 세계 제조업 생산액 내 비중은 25% 내외였다. 일본이 20%, 독일이 10%에 조금 미치지 못했다. 중국은 1990년대 후반 5% 수준에서 2020년 35%를 돌파했다. 기존 '제조 강국'이자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 불렸던 일본, 독일, 한국은 지금 만성적 저성장과 저출산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도 출혈이 커서, 결국 '러스트 벨트'의 분노는 트럼프,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의미의 트럼프 전 대통령 캐치프레이즈)로 분출되고 있다.

미일 관계 경색과 '태평양 전쟁'의 부산물로서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수출제조업 부흥, 중국 특수 등 우리의 노력보다는 국제정치의 조류가 우리의 흥망에 더 큰 영향을 미쳐 왔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정부와 국민의 노력만으로 우리 경제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지금, 미중 패권 경쟁은 어쩌면 우리가 반드시 기회로 활용해야만 하는 세계사의 중대 변곡점이 아닐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을 놓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우려 섞인 온라인카지노 후기 벳엔드와 논평이 많지만, '미래 30년'의 탈중국 국제 분업 구조 재편은 분명 우리에게 기회요인이다. '기회'라는 녀석은 참 묘해서,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을 때도 많고, 먼 훗날 돌이켜 보았을 때 그것이 기회였다는 탄식을 주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자세와 집중력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공식적으로 '선진국'으로 분류한 지 3년이 지났다. 우리 아들, 딸들이 장성했을 때 과연 한국은 여전히 선진국으로 남아있을까 아니면, 기회를 놓치고 쇠락한 세계 경제사의 반면교사가 되어 있을까. 반전(反轉)의 기회는 지금 도착한 것 같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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